숨쉬고 살아가기

이미 금이 가고있는것은 돌이킬수가 없다. 깨어져야 끝나는것

파도소리-옥샘 2024. 3. 3. 13:45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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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랫동안 접시겸 반찬용기로 뚜껑있는 그릇을 애착 사용하고 있었습니다.
하지만 며칠전 김치찌개를 덜어 먹고 설겆이를 하니 길게 간 금 안으로 붉은 색이 베어들어있었습니다.
그동안 깨끗한 반찬만 담아봐서 깨진지 조차 몰랐던 접시는 이미 조금씩 망가져가고 있었습니다.
 


인연들은 다 그런가봅니다. 
제 사랑하는 그릇이던, 물건이던, 혹은 사람조차도,
처음 만나서 설레여하며 사용하고 만나고할때는 반짝반짝 빛나고 뭐든 담아도 다 좋아보이고 하던 시절이 지나고 나면
 
가끔씩 애착하며
내가 사랑했던 그 추억이 또 생각나서 자주 쓰지 않아도 좋은 것만  담고,
좋은 추억만 남기려고 하다가
 
어느날 
작은 실수로 몇번 가벼운 충격들을 주게 되면
약한 고리의 어느 부분이 조용히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.
아무도 모르고, 내 자신조차도 모르지만,
사실은 조금씩 금은 가고 있을수 있습니다.
 


나와 친하다고 나의 방어선인 세걸음안에 들어 온 사람이
그동안 많이 편하고 좋았으나, 그 세걸음 안은 왠지 불편해서 끙끙 앓지만,
좋은 관계를 망치기 싫어서 내색도 못하고 있다가
오히려 내가 두걸음 뒤로 물러서며, 나의 방어선을 지키려고 할때가
바로 금이 시작되는 순간.
나도 모르는 그 순간이 시작되는 순간.
나는 뒷걸음치고 멀어질 순간을 생각합니다.
그러다가 얼핏 사소해보이는
김치찌개처럼 강하고 매운 얼얼함에 
된통 놀라서 붉은 상처가 나버리고,
그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.
사람이란 미련한 존재라 그 순간이 와도 이제 이별이 가까웠음을 알아도
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이 미련한 발목을 잡아 
어떻게던 시간을 멈추려고 합니다.
애착 접시는 또한번 저의 맛난 음식을 채워주고
이 접시처럼 편히  쓰고 자주 쓰고 했던 것이 없었음을 알고,
함께해주어서 감사함을 느끼고
다시 한번 더 닦아서 새로운 음식으로 새로운 추억을 만드려고 
설겆이를 하였습니다.
하지만
 
거기까지가 끝이었습니다.
세제로 거품을 내고 
틈 사이 끼인 흠을 떼어내려고 나도 모르게 힘을 주는 순간
깨끗하게 금이 간데로 
무너진 접시.
접시의 금은 안쪽에서 붉은 생채기로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.
그리고 접시가 준비던 또 다른 한줄의 금.
금은 한줄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.
이 금에서 쓰러지지 않았으면, 접시는 다음 금에서 무너졌을 것이었습니다.
 


때를 알고 놓아주어야 하는 인연을 알지 못하고 
미련스레 설겆이를 하던 제게
접시는 놓아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.
 
아마도 이 순간 역시 조심스레 설겆이하여
또 애착접시가 그릇장으로 옮겨졌다면,
그 다음번엔
애착접시가 감당도  못할, 뜨겁고 맵고 짠 음식을 가득 담았던 순간에
식탁위에서 깨졌을 지도 모릅니다.
나와 애착접시 둘만이 알고 있던 금의 비밀이
모두에게 나타나서
나의 새로운 좋은 추억의 순간을 망쳐버릴까봐
조용히 마지막을 나와 함께하고 가버린 접시.
그  만큼이 우리의 인연의 끝임을 아는 것도 중요한것같습니다.
 
이제 남아있던 고추가루를 깨끗하게 닦아내고
식탁위에 마지막으로 애착접시를 올려봅니다.
강력본드로 붙인다면, 음식을 담는 용도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도 쓸수 있을만큼 깨끗한 상태이지만,
또 새로운 금이 나와의 이별을 준비하려고 하겠지요.
놓아줄때가 되었으니
나의 인연은 이렇게 끝을 향해갑니다.
 



소중하였지만, 어느날 나와 멀어진 모든 분들이 생각나는 밤입니다.
다들 새로운 인연과 새로운 곳에서 좋은 추억 담으시길 바랍니다.